내 생의 멋진 날

강릉 바다를 더 향기롭게 만드는 게 커피다. 

강릉 바닷가의 풍경을 쫓아 헌화로에서 아들바위까지 북상하다 보면 커피향이 흐르는 작은 해변들을 지나게 된다. 지금은 강릉항으로 불리는 경포대 바로 아래 안목항. 강릉 커피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강릉 안목항 ‘커피 해변’에 자리한 ‘엘빈’의 2층 테라스. 따스한 커피를 마시며 동해바다와 백사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다
일명 ‘커피해변’으로 불리는 안목항에는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커피전문점이 들어서 있다. 한적한 바닷가였던 이곳은 10여년 전 여러 배합의 커피를 내놓는 커피 자판기가 늘어서며 강릉의 명소가 됐다. 한때는 커피 자판기가 100여대에 달했으나,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다. 대신 원두를 직접 볶고(로스팅), 뜨거운 물을 내려서 커피를 만드는 드립 커피점이 많이 생겼다.

프랜차이즈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커피 장인’들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다. 커피커퍼, 산토리니, 엘빈 등이 이 해변에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안목 해변의 커피 전문점은 대부분 2층 야외 테라스를 갖추고 있어, 이곳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놓고 바다와 백사장을 바라다볼 수 있다. 

왕산면 ‘커피뮤지엄’에서 선보이는 핸드 드립 커피.
주문진항 바로 아래인 연곡해변도 커피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연곡해변에는 드립 커피점으로 명성이 자자한 카페 ‘보헤미안’이 있다. 강릉이 지금 같은 ‘커피의 메카’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커피명장 박이추씨가 운영하는 가게다. 재일교포인 그는 1980년대 한국에 커피를 필터에 내리는 드립 커피를 처음 소개하기 시작한 1세대 바리스타다. 1988년 서울 혜화동에 커피솝을 열고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그는 2000년 강릉으로 내려와 ‘보헤미안’을 열고 제자를 양성했다.

박씨가 강릉에 올 무렵 다른 장인들도 이곳으로 몰려들며 강릉은 전국 최고의 커피명소가 됐다. 인구 22만명의 중소도시인 강릉에 현재 커피 전문점이 300여 곳이며, 이들 매장이 창출하는 연간 부가가치는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왕산면 ‘커피뮤지엄’의 로스팅 기계.
안목항에서 시작한 ‘커피커퍼(cupper)’는 왕산면의 외진 산골에 커피농장도 차렸다. 온실 속 농장에서 국내 최초로 상업용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커피 전문 박물관인 ‘커피뮤지엄’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은 다양한 커피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로스팅에서부터 분쇄·추출에 이르기까지 커피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핸드 드립 추출법과 터키 커피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커피공장을 갖춘 ‘테라로사’도 빠트릴 수 없는 커피 명소이며, 명주동의 ‘봉봉방앗간’과 커피 전문서적을 읽을 수 있는 그 옆의 ‘명주사랑채’도 들러볼 만하다. 

하슬라 아트월드의 야외 전시물.
정동진에서 들렀던 ‘하슬라 아트 월드’도 커피 명소로 꼽힌다. 하슬라는 ‘해와 밝음’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로, 삼국시대에 강릉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야외 조각공원과 미술관으로 꾸며진 예술공간이지만, 이곳 주인이 박이추씨에게 배운 커피맛도 뛰어나다. 정동진 바다와 그 옆을 흐르는 해안도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도 갖추고 있다.

겨울 바다와 커피는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차가운 백사장을 걷고 나서 마시면 향긋한 커피의 온기가 순식간에 온몸에 퍼진다. 마주 앉는 이와의 대화도 한층 더 정겹고 따스해진다. 

● 여행정보(지역번호 : 033)

서울에서 자동차로 출발할 때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강릉나들목이나 옥계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동진역까지 가는 기차는 오전 7시10분부터 오후 11시15분까지 운행한다. 경포해변 주변에 호텔·리조트가 많지만, 일출을 감상하려면 정동진역이나 모래시계공원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심곡항·금진항에는 민박집이 몇 곳 있다. 강릉역 근처 ‘성원식당’(646-0219)은 곰치국이 일품이며, 사천면 사천진 포구의 ‘진보수산’(644-1712)은 물회로 유명하다. 정동진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5000원. 하슬라 아트월드 644-9411, 보헤미안 662-5365(연곡점)·646-5365(경포대점), 커피뮤지엄 655-6644, 테라로사 648-2760, 봉봉방앗간 070-8237-1155, 명주사랑채 640-4807, 엘빈 652-2100

Posted by 친구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