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멋진 날

♠ 원시의 시간 속에 멈춘 곳,우포늪

경상남도 창녕군 우포늪

우포,목포,사지포,쪽지벌을 총칭하는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내륙습지이다. 1997년 생태 경관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3월 습지의 보호와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국제 조약인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에 등록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여름철 장마가 질 때면 넓이2,313km2의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늪지가 된다.수많은 동식물이 이곳을 서식처로 삼고 살아간다.

우포는 동 트기 전 새벽 무렵에 가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새벽녘 우포가 보여 준 경이로운 푸른 색채는 원시의 장엄함과 숭고함이 담겨 있어 절로 우러러보게 만든다.하늘도,늪지의 물도,나무도,풀도 모두 푸르다.발길을 향하는 곳마다 푸르른 원시의 빛이 가득하다.소목 근처에서 우포늪을 바라보니 첩첩산들이 우포를 다정히 둘러싸고 있었다.산과 산 틈새로,늪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물안개가 스멀스멀 퍼져 나갔다.늪의 물은 마치 커다란 거울인 듯 경계의 나무를 그대로 표면에 그려 냈다.작은 것 하나도 놓칠 수 없을 만큼 숨막히는 아름다움이었다.

어느새 동쪽 하늘이 밝아지더니 붉은빛이 산등성이 위로 번져 나갔다.그 빛이 하늘을 서서히 물들이고 파란빛을 걷어 낼 무렵 늪지의 나무와 풀은 비로소 초록의 빛깔을 찾았다.우포늪이 매력적인 건 바로 그런 자연의 색채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우포늪의 변화는 이른 아침 안시 운하에서 바라본 색채를 떠올리게 했다.맑은 햇살이 비치던 안시는 마치 색채의 마술사가 마술을 부린 듯 환상적이었다.색채의 변화와 조합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흘러나오던 안시의 그 시간이 우포늪의 일출과 함께 데자뷰처럼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물안개는 신비로운 기운을 품은 채 조용히 하늘,숲 사이로 파고 들었다.

♠ 치열한 삶과 자연이 맞닿은 곳

태양과 안개가 여전히 우포늪에 머무르던 그때 쪽배를 탄 강태공이 안개를 헤치고,햇살에 눈부신 파문을 일으키며 늪을 천천히 가로질렀다.신비로운 안개 속을 유유히 건너는 그가 마치 신선처럼 보여 현실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생업을 위해 그물을 걷고 있었지만,그 모습에는 세속을 넘어선 지극히 성스러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속됨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무진한 안개 속 그의 모습은 빛을 건져 올리는 구도자의 모습이었다.어쩌면 그의 성실함이 그를 빛나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초월적인 은총이 아우라처럼 그를 둘러쌌다.

태양도 멀찌감치 물러나서 그를 지켜보았다.늪은 여전히 잔잔했고,시간이 멈춘 것도 같았다.그물을 걷어 올리는 그가 없었다면 마치 늪 위를 흐르는 바람도,시간도 모두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갑자기 태양빛에 반짝거리던 늪이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변했다.그 속에서 긴 장대를 늪 깊숙이 꽂으며 쪽배를 밀고 나가는 강태공을 바라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해 보았다.

♠ 새벽 안개를 벗은 우포의 낮 풍경

완전히 해가 떠오른 우포는 새벽녘의 신비로움은 사라졌지만,여전히 고요하고 평화로웠다.늪지를 벗어나 마을로 발길을 향했다.싱싱한 초록색 마늘 줄기로 가득한 우포의5월은 싱그러움이 가득했다.마늘밭 너머로 소박한 지붕의 마을이 있고 그 너머로 정겨운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신당리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마늘밭 사이에 있는 소박한 마을길을 스쳐가다가 초록의 대지 속에 빨간 지붕을 한 작은 교회를 발견했다.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과 몇몇 아이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세상의 탁류를 거슬러 살아가는 이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믿음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시간이었다.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에 마음에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한다. "차린 건 없지만 점심이나 드시고 가세요."목사님은 예배가 끝나자 얼른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말한다.낯선 나그네를 마음으로 맞아 주는 진심에 식탁 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동네어르신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향긋한 쑥국과 따스한 밥 한 공기,상큼한 나물반찬,그리고 입맛 나는 굴비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맛난 점심을 먹었다.물질만능의 세상에서 오랜만에 순수한 마음으로 가득한 교회에서 훈훈한 시간을 가졌다.

우포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조금 거창하지만 세상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삶의 중심을 돌아보는 철학과 생명의 여행이었다.무엇보다 새벽녘에 바라보는 우포는 내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다.그곳에서 태초의 자연을 만났고 순수한 믿음와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을 만났다.그날의 만남과 따뜻했던 식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 준다.그리고 언젠가 또 다시 우포를 찾는다면 다시 그곳으로 가서 어르신들과 둘러 앉아 세상에서 가장 맛난 점심을 먹으리라.

<여행 정보>

#도착하기

대중교통- 고속버스를 타고 창녕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거나 근처 영신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우포늪은 크게4구역으로 나뉘는데1, 2코스는 생태관이 있는 세진 주차장 방면 버스를 타고 주차장에서 내린다. 3코스는 이방 방면 버스를 타고 주매마을 하차, 4코스는 이방 방면 버스를 타고 우만마을에서 내린다.이방 방면은1일12회 정도,세진 주차장 방면은1일5회 정도로 버스가 자주 있지 않으므로 버스 시간을 확인한다.

자가용- 중부 내륙 고속도로▶창녕IC▶우회전▶이정표 따라5.8km▶회룡마을에서 우회전▶세진 주차장 도착

#따라가기

우포늪의4코스를 한 바퀴로 쭉 돌아볼 수는 없다.즉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와 다른 코스로 간다.따라서 시간이 꽤 걸리고 많이 걸어야 하므로 상황에 따라 골라서 본다.우포늪 생태관(www.upo.or.kr, 055-530-1552)안내를 참고한다.이른 아침부터 본다면3코스나4코스를 먼저 돌아 보기를 추천한다.한 폭의 살아 있는 동양화가 펼쳐질 것이다.

➊ 제1코스: 세진 주차장 왼쪽▶우포늪 대대제방/우포늪 전망대▶쪽지벌과 우포늪 사이 이동,짧은 시간에 우포늪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코스(왕복1시간 소요)
 제2코스: 세진 주차장 오른쪽▶대대제방▶배수장 뒤편▶토평천을 건너 사지포늪과 우포늪의 사잇길인 제방길을 따라간다.우포늪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는 코스(왕복3시간 소요)
➌ 제3코스: 장재마을에서 늪을 따라 들어와 걷는다.늪과 더불어 살아온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코스(2시간 소요)
➍ 제4코스: 우만마을에서 들길을 따라가다 가마골마을 앞에서 수로(水路)를 따라 들어간다.늪의 역사와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코스(2시간 소요)

#먹어 보기

말흘리에 있는'장마을'은 장맛이 유명하며 청국장이나 송이된장찌개가 정겨운 시골맛을 선사한다.영산면에 있는'도리원'의 약초장아찌와 산채나물이 입맛을 잡아 줄 것이다.

Posted by 친구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