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멋진 날

겨울의 끝자락에 강릉 바다를 찾았다. 강릉 해안에는 기차가 바다 바로 옆에 머무는 정동진을 필두로 감성을 자극하는 여행 명소가 널려 있다. 바닷가 절벽을 따라 활처럼 휘어져 달리는 해안도로인 헌화로, 파도에 종잇장처럼 찢긴 기이한 바위인 아들바위 등이 강릉의 바다가 빚은 풍경이다. 강릉 바닷가 곳곳에는 커피향도 그윽하다. 커피 전문점이 빼곡히 자리 잡은 ‘커피 해변’이 생기더니 커피 박물관, 커피 농장까지 들어서 강릉은 요즘 ‘커피의 메카’로 불린다. 남녘에서는 봄 소식이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바람이 차가운 강릉은 겨울 바다와 따스한 커피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낭만적인 여행지다.

강릉의 금진항과 심곡항을 잇는 ‘헌화로’(獻花路)는 가파른 절벽과 바다 사이에 놓인 아슬아슬한 해안도로다. 해질녘 헌화로 앞 동해 바다가 포효하고 있다. 바위를 때리며 몰아치는 저 파도가 겨울 강릉 바다의 매력이다.
#기암절벽과 파도 사이에 놓인 헌화로


강릉 바닷가 절경을 남쪽에서부터 둘러본다. 서울에서 출발해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옥계나들목으로 나와 다시 7번 국도와 해안도로를 타고 북상하는 여정이다.

강릉 남쪽의 작은 항구, 금진항과 심곡항을 잇는 해안도로가 ‘헌화로’(獻花路)다. 우리 땅에서 바다와 가장 바투 붙어 있는 차도로 알려진 곳이다. 한쪽은 가파른 절벽, 다른 한쪽은 푸른 바다와 접해 있다. 절벽 아래 해안에 가까스로 차도를 낸 것이다. 길이는 2㎞ 남짓. 워낙 바다에 가까이 붙어 있고 파도가 거세다 보니, 도로 위로 바닷물이 넘어오기 일쑤다. 도로 곳곳에 파도가 심할 때는 자동차를 세워놓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길 이름은 익히 알려진 신라 성덕왕 때 지어진 향가 ‘헌화가’의 설화에서 따 왔다. 신라시대 수로부인이 강릉태수를 제수받은 남편과 함께 부임지로 향하던 길이었다. 수로부인이 해안가 절벽에 핀 철쭉꽃을 보며 누군가 저 꽃을 꺾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마침 암소를 몰고 지나던 한 노인이 선뜻 나섰고, 그가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가 헌화가다.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에 올 초 새로 선보인 정동진 박물관.
#정동진의 새 명물, 기차 모양 박물관


헌화로의 북쪽 끝인 심곡항에서 기마봉을 넘어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정동진이다. 

정동진역 남쪽 해변에 꾸며진 모래시계공원에는 올해 초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철로를 깔고 그 위에 1985년에 제작된 기차 7량을 세워 박물관으로 꾸민 ‘정동진 박물관’이다. 실제 기차가 오가는 정동진역과는 1㎞ 정도 떨어져 있다. 정동진역의 기차와 이 공원의 모래시계를 모티브로 삼은 박물관 안에는 동서양의 시계 관련 유물 1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1912년 4월15일 타이타닉호에서 침몰 당시 멈춰버린 타이타닉 금장 회중시계도 전시되어 있다.

정동진은 두말이 필요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일출명소. 명성이 자자한 해돋이를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기차 옆 앞바위 부근에 사람들이 가장 많다. 이곳부터 모래시계공원까지 이어진 해변에는 새벽잠을 설치고 나온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해안가 산자락에 세워진 야외조각공원인 하슬라 아트월드, 함정과 잠수함 등으로 꾸민 전시시설인 통일공원도 정동진역에서 지척이다.

#파도가 찢어놓은 듯한 아들바위


강릉의 가장 북쪽인 주문진읍 교향리의 소돌(牛岩)이라는 작은 마을에는 기묘한 형상의 ‘아들바위’가 앉아 있다. 소돌마을 해안가에 여러 개 널려 있는 기암괴석 중 가운데 것이 아들바위로, 옛날 노부부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아들바위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게 등대가 딛고 서 있는 바위다. 1억5000만년 전에 바다에서 솟아난 바위가 동해의 거친 파도를 맞아 생성된 풍경이라고 하는데, 마구 구기고 찢어놓은 종잇장 같기도 하고 찰흙을 거칠게 마구 헤집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이 바위를 옆에서 보면 육중하고 힘센 수소를 닮았다. 그래서 이 마을이 소바위, 즉 소돌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주문진 소돌마을의 아들바위는 동해의 거친 파도에 종잇장처럼 찢긴 듯한 기이한 모양이다.

Posted by 친구1004